코나 전기차 강릉 당일치기

코나 전기차 강릉 당일치기. 요즘 차를 꼭 사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가끔 아버지 차를 같이 몰다가 시간대가 겹쳐 차가 필요할 땐 카셰어링을 이용하곤 했다. 휴무 때마다 버스와 기차로 집과 기숙사를 오가지만, 여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따지니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차를 산다면 뭘로 고를지 알아보기로 했다.

 

대리점 이곳저곳을 들러 신차를 잠깐 타 봤는데, 그 중에 몰기 괜찮았던 차는 K3 GT(1.6T 가솔린), 클리오, 코나 전기차 딱 요 정도였다. 아버지 차와 비슷한 몸집의 팰리세이드도 꽤 괜찮았지만, 큰 차로 경험했던 몇 가지 불편한 점(배려가 필요한 주차, 과한 유지비)이 계속 생각나 걸러냈다. K3 GT는 노면을 잘 읽는 하체 셋팅과 경쾌하고 날렵한 움직임이 만족스러웠고, 클리오는 QM3보다 나은 상품성과 구매 조건(5년 무이자 할부-지난해 연말)이 좋았던 차였다.

 

코나 전기차는 배터리를 가득 채워서 406km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길어야 200km 남짓 달리는 다른 전기차보다 멀리가기 좋지만, 실제로 그만큼 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연기관 차보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이 날씨에 고속도로를 달리면 주행가능거리가 확 줄어들 게 뻔할테니까. 그럼에도 전기차의 여러 이점(통행료 및 주차비 감면, 저렴한 유지비와 연료비, 절세 혜택 등)을 생각하면 구매력이 높은 차임은 분명해 보였다. 하단의 내용도 참고해 보세요.

 

최근 이 차를 탔던 건 지난해 연말이었다. 계획에 없던 긴 휴가가 생겨서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어디가 좋을지 알아보다가 문득 강릉이 떠올랐다.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새 인연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휴무 때면 온갖 생각들을 경포와 강문 해변의 파도에 버리곤 했다. 그곳의 짬뽕순두부와 고소한 커피, 밥보다 회가 듬뿍 담긴 회덮밥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먹킷리스트다.

 

 


강릉 당일치기 계획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해 9시쯤 강릉에 도착했다가 저녁 9시에 동대구역에 차를 반납하는 일정이었다.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안 7번 국도를 경유해 쭉 올라가서 동해고속도로를 달려 경포호 주변에 도착했다가 되돌아가는 길인데, 코스 길이만 대략 600km가 넘는다. 배터리 충전량이 80%만 넘는다면야 강릉에서 한 두 번의 급속 충전만으로 잘 마무리될 수 있겠다 싶었다.

 

새벽 4시. 차 시동을 켜니 배터리 충전량은 83%, 주행가능거리가 350km, 목적지까지 거리가 322km로 뜬다. 이 정도면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추운 날씨와 오르막 경사가 많은 7번 국도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동해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부터는 배터리 잔량이 10% 안팎까지 바닥치며 운전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시트 열선 기능조차 끄고서 달렸는데 말이다.

 


결국 오전 8시쯤 목적지까지 40km를 남긴 채 옥계휴게소를 들렀다. 전에는 이곳에 전기차 충전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차량 진입로 근처에 나란히 3개씩이나 생겼다. 왼쪽 충전기 앞에 차를 대 회원용 충전 카드를 태깅하고 급속 충전(DC콤보) 커플러를 꽂았더니, 응? 반응이 없다. 충전기 연결 화면에서 무한 로딩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옆 충전기를 본다. 아예 화면이 꺼져 있다.

 

 

다행히도 맨 오른쪽 충전기가 정상 작동돼 배터리를 채울 수 있었다. 시간 당 충전량은 39kW. 80%까지 충전시키려면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 충전 커플러를 꽂아둔 채 차 문을 잠그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메뉴는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이다. 유리창 너머로 파도에 일렁이는 아침 햇살을 푸근하게 바라보며 젓가락으로 느긋하게 면을 건져 입에 가져간다. 국물 한 모금에 꽁꽁 언 코가 풀리고, 따뜻한 우동 면이 헐랑한 빈 속을 든든히 채운다.

 


휴게소 주변을 천천히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차로 돌아왔더니, 어? 46%까지만 채워졌다. 1시간 이상을 차 밖에서 보냈는데 급속 충전이 딱 40분만 진행했다 멈춘 것이다. 충전이 필요한 다른 전기차를 위해 만든 매너 설정으로 보인다. 꽂힌 그대로 다시 한 번 급속 충전을 하고 휴게소를 벗어난다.

 


충전 금액은 1kWh 당 173.7원(환경부). 얼마 전 팔공산 주차장 앞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는 1kWh 당 200원(대구시설공단)을 받았다. 충전기를 관리하는 곳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나 보다. 참고로 충전량 80%부터는 급속 충전 커플러를 꽂아도 충전 속도가 저만큼 나오지 않으니, 꼭 가득 채워서 다닐 필요는 없다. 가끔 30분 이상 차 밖에서 보낼 일이 있을 때만 틈틈이 채워주면 될 듯하다.

 


이날 경포호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반이다. 경포주차장에 한국전력이 관리 중인 1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 있는데, 화면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손으로 햇빛을 일부 가려야 희미하게 보일 정도다. 충전 커플러를 꽂아두고 경포호 주변을 산책한다. 경포호 바로 옆 스카이베이경포 호텔은 연말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거듭 찍어가곤 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근처에 짬뽕순두부를 먹으러 가게를 찾아갔더니 입구에 '만차'라는 입간판이 걸려 버렸다. "벌써?"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기 무섭게 다른 집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그냥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근무하는 동안 자주 들렀던 곳인데, 문을 열자마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사정을 들어보니 올림픽 이후로 순두부 집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흐음...당분간 짬순 먹기는 힘들어지겠다. 아예 시내로 가서 홍합 가득한 이만구 옆 집 교동짬뽕을 먹으러 갈 걸 그랬나 싶은 찰나에 고소한 카페라떼가 나왔다. 같이 나온 수제 땅콩 쿠키를 오독오독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가족이 생각나 커피콩빵(가배만쥬) 두 박스를 사간다.

 

 

근무지로 배치받았던 경기장에 차를 대고 뭔가에 홀린 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키 센터와 바로 옆에 있는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 더 밑으로 내려가면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이 벌어졌던 아이스 아레나가 있고, 길 건너편 종합 경기장을 등진 곳에 "영미! 영미! 영미! 헐!"을 외쳤던 컬링 센터가 자리해 있다. 몇 달 만에 들렀던 곳인데도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보람찼던 그 때의 열기는 이제 온데간데 없다.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걷다가 종합 경기장 한 켠에 세워진 전기차 충전소를 발견했다. '아니 왜 이런 곳에 세워뒀지?' 싶은 생각도 잠시, 멀리 대 놨던 차를 옮겨 충전 커플러를 꽂았다. 다른 충전기보다 관리 상태가 좋은 것을 보니 설치된 지 얼마 안 된 듯하다. 여기서 배터리를 90%까지 채우고 강릉역에 들렀다가 늦은 점심으로 회덮밥을 먹으러 이동한다.

 


이것이 밥보다 회가 많은 회덮밥이다. 회 무침을 시켰더니 공깃밥이 따라 나오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참기름과 초고추장을 휘휘 둘러서 두툼하게 썬 회를 맛보고, 쓱쓱 비벼 놓은 냉면 그릇에 공깃밥을 넣어 맛있게 쉐킷쉐킷하여 입안 가득 회덮밥을 떠 넣어준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만 원의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을 거다. 5천원 더 보탠 특사이즈 회덮밥은 더더욱 행복하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동대구역으로 차를 반납하러 간다. 배터리 잔량 87%, 주행가능거리 401km, 목적지까지는 308km가 남았다. 히터를 틀었다간 주행가능거리가 320km대로 뚝 떨어진다. 열선 시트만 켜 놓고 달려도 될 만큼 날이 풀렸기 때문에 히터는 그냥 꺼 놓고 달리기로 한다.

 


이젠 두려울 게 없다. 지나온 오르막만큼 내리막 길을 즐겁게 달릴 일만 남았다. 배터리가 더 닳을까 노심초사했던 동해고속도로에서도 일반 내연기관 차처럼 속도를 내며 2차선 앞차를 여유롭게 추월한다. 7번 국도 역시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른 보상 효과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한다. 다른 차들이 내리막에서 풋브레이크를 쓰는 동안, 전기 모터 회생 제동 단계를 높여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물론 회생 제동 중에도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제동등을 비추기 때문에 뒤에서 따라오는 차들도 속도를 줄이고 있다는 점을 인지시킬 수 있다.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거쳐 동대구역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8시. 강릉에서 회덮밥을 먹고 난 4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배터리 잔량 16%, 주행가능거리는 64km가 남았다. 역시 트립컴퓨터에 표시된 주행가능거리는 참고로만 알아둬야 겠다. 최소 90% 정도는 배터리를 채워둬야 대구-강릉 구간을 무난히 다녀올 수 있을 듯하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걱정할 게 없다. 경차와 동일하게 50%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려할 게 있다면 전기차 충전소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전기차 충전기가 1기 이상 설치돼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충전기도 있어 배터리 충전량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내가 사는 곳 5km 내엔 급속 충전기가 설치된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배터리를 채우려 대구로 넘어가거나 새 건물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읍사무소에 잠시 들렀다 가곤 한다.

 


예전보다 전기차 충전기가 부쩍 늘어났다곤 하지만 도시마다 천차만별이다. 7번 국도 구간은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된 곳을 찾기 매우 힘들었고, 군소도시 단위를 넘나들 땐 완속 충전기마저 설치된 곳이 드물다. 완충해도 200km 남짓 달리는 전기차들에겐 7번 국도는 그야말로 마의 구간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코나 전기차와 쉐보레 볼트(BOLT)의 경우 이런 점에선 약간 자유로울 수 있다.

 


주행 성능은 내연기관을 채운 코나보다 낫다. 변속기가 전진과 후진 밖에 없으니, 일부 저속 구간에서 느낄 만한 변속 충격이 없다. 배터리 팩이 바닥에 깔려서 무게 중심이 낮고, 움직임이 조금 더 민첩하다. 대신에 코나보다 껑충 오른 듯한 시트 포지션, 뒷좌석에 오랜 시간 앉을 시 다리가 약간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트렁크 수납 공간은 일반 코나와 큰 차이가 없고, 출고 시 타이어도 일반 내연기관 차와 같아서 제동력 차이도 느끼기 힘들다.

 


무엇보다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라면 가격이다. 차 값으로 드는 돈이 취등록세를 합쳐 5,300만원이고, 국고 보조금(9백만원)에 지자체 보조금(5백만원 예상)을 덜어낸 가격으로 얼추 계산해도 4천만원에 육박한다. 친환경을 위한 대가라 하기엔 결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난해에 계약했다면 국고 보조금 1,200만원에 보조금 6백만원으로 3,500만원에 살 수도 있었겠지만, 올해라면 냉정하게 내연기관 차를 택하든, 더 기다려서 600km 대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한 또다른 전기차를 알아보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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