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의 미로 해석 - 동화는 행복하게 끝나야 한다.

포스터에 낚여서 애엄마들이 애기들 데리고 보러 갔다가 봉변당한 그 영화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국내에서 마치 가족용 판타지인것 마냥 홍보해버리는 바람에 한국에서만 비운의 명작영화,저주받은 걸작으로 평가 받고있다. 미국,멕시코,스페인이 합작하여 2006년에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만들어진 영화이다. 일반적인 오락영화가 아니고 동화적인 아름다움을 포함한 기괴스러운 판타지 그리고 호러에 가까울 정도의 잔혹성이 였보이는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감독 델 토로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있다.

좋은영화란 말을 너무 듣다보면 오히려 보기 싫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었다. 중간중간에 보기 싫은 기괴스럽고 잔혹한 장면들이 많고 결말이 참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영화는 내전이 막 끝난 1944년시점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겪는 환상과 현실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의 절반은 동화덕후소녀 오필리아의 창작물이다. 봉제사의 딸 오필리아는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 여기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존재일 거란 상상을 한다. 상상의 근거는 어깨의 불주사 자국. 환상세계의 대변인 '판'이 어깨의 반점을 증거로 왕국의 공주라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자국은 오필리아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을 것이고 오필리아도 스스로 자기 몸의 반점을 알고 있다.요컨대, 판이 알고 있는 건 오필리아도 알고 있다.

 

첫번째 임무 <두꺼비왕자에게 알사탕 세개 먹이고 열쇠 뺏기>

엄마는 오필리아에게 이쁜 드레스를 입히고 공주님 같이 꾸며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오필리아의 지위는 싸이코패스 대위의 딸이다. 오필리아는 이게 싫다. 소녀가 원하는 공주님은 권력을 승계하는 현실의 공주가 아니라 순수하고 블링블링한 천국의 공주님이다. 소녀의 눈에 현실의 드레스는 구정물을 뒤집어 쓴 더러운 천쪼가리에 불과하다. 드레스를 엉망으로 더럽힌 오필리아. 엄마는 물론 대위도 실망했을 거란 엄마의 말에 예쁜 미소를 보여준다. 많이 예쁘다.

 

두번째 임무 <식욕 참아내고 관리인 열쇠 뺏기>

판이 주는 임무 난이도가 갑자기  크게 상향조정된다. 만들라고  잘 분질러지는 분필하나 쥐어주고 모래시계 시간제한까지 걸어놓는다. 어린이 슬레이어 관리인에게 들키지 않고 금고털기 임무이다. 여기서 오필리아는 금고 잘 털고 돌아오면서 판의 경고(절대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를 망각하고 포도를 먹는다. 하나가 아니고 존나 여러 번 먹는다. 이 짓을 말리려는 팅커벨을 뿌리치면서까지 꾸역꾸역 먹고 그 탓에 팅커벨 두 마리 관리인한테 대갈통이 뜯긴다. 이 뜬금없는 전개는 이야기의 기본 규칙이다. 이야기에서의 금기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밑도 끝도 없이 오필리아가 포도의 유혹에 무너진 것은,금기는 깨지고 위기가 도래 해야하는 이야기의 구성을 소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피는 놓쳤으나 퀘스트는 깼다. 그러나 어째, 판의 임무를 진행할 수록 엄마의 몸이 악화된다.

 

 

판과 오필리아

 

 


내가 보기에 '판'은 악이다. 일단 생긴게 선해보인진 않는다. 직쏘 같이 생겼다. 광대 큰 놈들은 믿으면 안 된다.어디 부하란 놈이 공주가 포도 몇 알 먹었다고 온갖 짜증을 내며 눈알 똥그랗게 뜨고 대들고 오필리아를 겁주는가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판은 오필리아의 창작인물로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보상'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끔찍한 '시련'을 부과하며 때론 살갑게 굴다가도 돌연 엄격하게 히스테리를 부린다. 소녀의 입장에서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판이 준 축복인지 저주인지 하여튼 흉물스럽게 생긴 맨드고라 뿌리를 어른들에게 들킨 후, 엄마의 산통이 시작된다. 결국 엄마는 출산고로 죽는다. 이것이 맨드고라의 축복이 강제종료 되어서 인지, 하필 그 타이밍에 의사가 죽어서 인지는 모른다. 어른이라면 의사의 부재를 더 큰 요인으로 여기겠지.

 

 


마지막 임무 <대위 아들 훔치고 소븐가드로>
반란군의 습격에 막사는 어수선하고 오필리아는 이제 대위한테 손찌검까지 당한다.소녀는 궁지에 몰렸고, 어김없이 위기의 순간 판이 등장한다. 마지막 임무를 내걸며 클리어 시 진짜공주님 시켜준다한다. 이번엔 멍청한 두꺼비나 눈 먼 관리인이 아닌 현실 보스 대위의 맵에서 대위의 아들이자 오필리아의 동생을 훔쳐오라는 것. 이미 퀘스트 난이도는 밸붕인데 아이템은 또 잘 분질러지는 분필 하나 달랑 쳐 준다 그런데 정작 대위의 방에 은신으로 침입한 이후, 분필은 대위에게 들켜 분질러진다. 오필리아를 구제한 건 판의 템이 아닌 현실템 액체 수면제다. 미궁을 헤치고 도착하니 판이 애기를 바치란다. 칼들고 있는 판. 갑자기 경계심이 든 오필리아는 동생을 내주지 않는다. 임무 실패다. 홀어머니의 재혼과 임신으로 인해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으나, 소녀는 운명에 대한 증오 보다 갓난 동생을 향한 애정이 더 컸다. 소녀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보상을 저버리고 아기를 지키는 것이 가장 나은 결말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둔 짧은 순간 마지막 몇 구절을 떠올린다.이야기의 영감은 친절하고 용감한 하녀의 자장가로부터 온다. 혁명은 계속되어도 소녀의 동화는 행복하게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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