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조혈모세포 기증 한 사람의 후기글. 시작은 감사패 사진으로 한다. 나는 어제 조혈모세포 기증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 집에 돌아온 놈이다. 별 거 없는 삶에 유일한 자랑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자랑하려고 글을 써본다.

 

1.입원 전

작년 연말부터 헌혈에 맛들려서 2주에 한번씩 꾸준히 성분헌혈을 해왔다. 올해 2월 여느 때와 같이 헌혈하러 갔는데, 접수해 주시는 간호사님께서 혈액검사 하는 김에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도 해보는게 어떠냐 말씀하셨다. 나도 골수기증(조혈모세포 기증)을 많이 들어봤고, 좋은 일이라 생각해서 어차피 뽑을 피 몇cc 더 뽑지 뭐~ 하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HLA 일치율이 2만분의 1정도밖에 안돼서 막 기증 신청 해놓고 10년 넘게 있어도 연락이 안 오는 경우도 파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올해 10월 초에 연락이 왔다. 전날 술 퍼먹고 해장근로 하고 있는데, 서울 번호로 전화가 온거다. 지방 사람이라 서울 모르는 번호는 잘 안받는데 마침 담배필 짬시간에 전화가 와서 받았다.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에서 코디네이터 라는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유전정보가 일치하는 환우분이 생겨서 연락 했다 한다.

 

나는 적어도 몇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8달만에 연락이 와서 당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최근에 기증 희망 등록한 사람부터 먼저 연락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이랑 상의하고 기증할지 결정해서 다음날 연락하라는데, 부모님께도 기증 신청할 때 연락오면 하겠다 말씀드려 놔서 스무스하게 처리됐다.

 

코디네이터님께 하겠다 연락 드리니, 며칠 뒤에 다시 연락이 오셔서 유전형 정밀검사를 위해 채혈을 한번 더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채혈도 아무데서나 하면 안되고 일부 병원에서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지방에 살아서 채혈이 가능한 병원이 한군데 밖에 없었다.

 

채혈하러 간 곳은 대학병원 암센터였는데, 나는 암환자가 얼마 없을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많았다. 병원 의자 가득히 환자들이 있었다. 여하튼 여기 수석간호사실 들어가서 채혈 간단하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채혈한 혈액은 퀵으로 바로 쏴진다고 한다. 일처리가 진짜 빨라서 놀랐다.

 

한 2주 정도 있다가 검사결과 나오면 연락 준다고 했는데, 여기서 유전형이 안 맞아서 걸러지면 어떡하지,, 하면서 염려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나머지 유전형도 일치해서 기증할 수 있다 하셨다. 그 후 기증 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는데, 이것도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한 병원, 그 중에서도 실제로 조혈모세포를 뽑아낼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가 좋을지 코디네이터님과 상의해 봤는데, 내가 사는 곳 병원은 연말업무가 바빠서 안된다 하고, 서울이나 부산중에서 고르라 했다.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부산이 더 가까워서 부산의 모 사립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 및 기증을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조금 더 멀더라도 서울에서 했어야 됐다...

 

아무튼 부산에 도착했다.! 이 때는 건강검진 받으러 부산에 간 날이었는데, 하늘이 쨍쨍해서 정말 좋았다. 부산역은 공사중이었는데, 어제 집에 올 때 까지도 공사를 했다. 기차 타고 부산에 가본적은 처음이었는데, 기차역 앞인데도 불구하고 부산역은 도로가 구불구불하고 복잡했다. 신기했다.

 

부산 모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이때까지 나와 연락하던 코디네이터님(1)을 처음으로 뵙고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남자분이셨는데, 정장핏이 너무 좋으셔서 간호사가 아니라 세일즈맨인줄 알았다.

 

건강검진 마친 후 그쪽 병원 코디네이터님(2)과 함께 기증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코디네이터님(2)께서 내 팔을 보더니만 혈관 상태를 보니까 팔에 주사 꼽아서 하면 중간에 혈관 터질 것 같네요~ 차라리 목에 있는 혈관으로 뽑아보는게 어때요? 그러면 기증 중에 팔도 움직일 수 있고 많이 편해요~이렇게 말씀하시는거다.

 

그래서 자세히 여쭈어보니, 일반 모세혈관 기증은 양쪽 팔에 주사를 꼽고 신장투석처럼 진행하는데, 이러면 양 팔의 움직임이 제한돼서 4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많이 불편하다는거다. 반면 목 혈관에 CVC를 꼽아서 진행하는 쪽은 목 하나로 프로세스가 다 진행돼서 팔도 편안히 움직일 수 있고, CVC 시술도 마취할 때만 따끔하고 그 후로는 큰 불편함이 없다는 거다.

 

나는 그 말 듣고 혹해서 그럼 그걸로 할게요! 라고 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팔로 할걸 그랬다. 안아프다고 한거 다 개뻥이다. 하지만 겪어본 적도 없는데 아픈지 안아픈지 어떻게 알겠어. 그냥 안아프다 하니 안아픈가보다~ 하면서 목으로 하게 됐다.

 

건강검진도 모두 정상으로 끝나고, 드디어 날을 잡아서 기증하게 되었다. 12월 18-20일간 입원하며, 19일에 조혈모세포를 채취하고 20일 아침 퇴원, 채취량이 기준치에 미달하면 20일에 한번 더 채취하고 동일 오후 퇴원하는 일정으로 잡혔다.

 

그리고 입원 사흘 전부터 혈액 내 호중구수를 늘리기 위해 그라신 투약이 있다고 했다.

 


짠~~~ 이게 그라신이다. 서울에서 퀵으로 보내주는데, 은박보냉가방에 담아서 하루만에 쏴주었다. 이것도 설마 부산에 내려가서 맞아야 하냐 여쭈어보니 그라신 투약은 사흘동안 동네 병원 응급실에서 저녁 시간대에 맞으면 된다고 한다. 다행이야 정말.

 

그라신 보내주시면서 코디네이터님(1)께서 경우에 따라서 허리나 골반이 뻐근할 수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개뻥이다. 첫 투약일은 괜찮았는데, 두번째 투약일부터 골반이랑 허리를 비롯해서 온 몸에 근육이 너무 아팠다. 걷지도 못했다.

 

코디네이터님(1)께 연락해서 선생님 이거 너무 아픈데 뻐근함의 정도가 심한거 아닌가요..??이렇게 여쭈어보니 하하 웃으시면서 촉진이 정~~~말 잘 되면 가끔 심하게 아픈 경우가 있어요~ 촉진이 잘 되고 있단 뜻이니 타이레놀 먹고 정말 못버티실 것 같으면 진통제 처방해 드릴게요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진통제 처방받아 봤자 타이레놀이랑 거기서 거기일 것 같고, 병원 또 가기도 번거로워서 어떻게 버텨 봤다. 기증하는데 이렇게까지 아프게 해야하나 싶어서 쪼끔 서러웠다.ㅜㅜ

 

어찌어찌 사흘간 잘 버티고, 대망의 입원일이 다가왔다. 18일 오후에 부산에 도착해서 밀면 한그릇 하고, 모 대학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으로 갔다.

 

 

2.입원

병실 사진이다.

 

입원할 때 쪼~~끔 섭섭한게 있었는데, 건강검진 받으러 부산에 내려갔을때는 코디네이터 분들(1,2)이 병실은 1인실로 나오고,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 줄거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막상 입원하러 내려가는 기차에서 코디네이터(1)께 연락이 와서, 병원에 병실이 너무 부족해서 1인실은 고사하고 5인실 자리도 간신히 잡았다. 미안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생 못해볼 수도 있는 1인실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설레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좀 시무룩해졌다. 쪼끔.. 쪼끔.

 

하지만 내 몸 호강하러 가는것도 아니라 사람 살리러 가는거고, 내가 누리는 입원비, 건강검진비 전액 수혜자께서 부담하는 거라 차라리 값싼 5인실에서 묵는게 그분께 경제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인실 못써본건 쫌 아쉽다.ㅜㅜ

 

입원한 날 저녁 마지막 그라신 주사를 맞고(이때는 너무 아파서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마지막 채혈검사를 하고 조혈모세포 채취를 위해 잠에 들었다. 역시 병원은 일찍 자더라. 오후 8시 30분에 소등하고 사람들이 잠에 들었다.

 

채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병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가 있던 병실이 면역,혈액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어서 면회도 제한되는 곳이었다. 다대수 병들이 그렇듯 연세가 꽤 있으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몸도 편찮으시고 노쇠하셔서 그런지 다들 아무 말도 안하고 하루종일 멍하니 있으셨다. 그런 분들 보면서 좀 짠해지기도 하고, 나는 하나도 안아픈데 병실 한자리 차지해서 누워 있어도 되는걸까, 원래는 이 자리도 다른 편찮으신분이 쓰셔서 캐어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좀 미안했다.

 

이건 채취 당일날 찍은 사진이다. 20시 30분에 소등해서 그런지, 아침 일정도 6시부터 시작됬다. 6시에 일어나서 일과 진행하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방탕한 대학생인 나에게는 너무 빡빡한 일정이었다. 팔에는 계속 생리식염수를 넣고 있고, 간호사님은 아침부터 오셔서 피를 빼갔다. 팔에 주사자국이 점점 많아져서 기분이 묘했다. 여하튼 깨어 있다가 아침을 먹고...(아침 메뉴는 생각하는 병원 밥 그대로였다..이렇게 몇달 먹으면 절로 환자 되겠다 싶었다.) 목에 cvc 삽입하는 시술을 간단히 하고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러 들어가겠다고 안내 받았다.

 

나는 시술이라길레 간단하게 진료실 이런데서 쭁~ 할줄 알았는데, 메디컬 드라마처럼 침대에 누워 엘리베이터 타고 실려가서, 스테인리스의 은색과 흰색밖에 없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 올라 시술했다. 가벼운 마음에 룰루~ 하고 갔는데, 수술실과 수술복, 많은 수의 의사들 비주얼에 압도돼서 좀 많이 쫄렸다.

 

국소마취 후 목에 구멍을 내고 cvc를 삽입 후, 피부에 고정하고(스테이플) 이쁘게 거즈를 덮어 내보내는 데 까지 30분정도 소요됐다. 그리고 다시 침대를 타고 이동해서(좀 쪽팔렸다..) 흉부 엑스레이 한판 찍고, 신장내과 내부의 채혈실까지 또 침대 타고 이동했다. 맨정신으로 침대버스 타는게 꽤 부끄러웠다.ㅎㅎ,,

 

3. 채취 및 퇴원

ㄴ채혈중 찍은 사진이다! 목에 있는 cvc로 한방에 진행된다. 팔은 편해서 좋았다.

 

그 후 채혈을 스무스하게 진행...할 줄 알았는데, 시술중 의사 선생님께서 내 몸무게를 잘못 아셨는지 그냥 리도카인을 조금만 넣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취가 너무 일찍 풀려서 목이 엄청나게 아파왔다. 급하게 진통제를 처방받아서 링거로 투약했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내가 특별한 케이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많이 아팠다.ㅜㅜ

 

원래는 채혈실 내부에 TV도 있고 접는 책상도 있어서 노트북 올려서 볼 수도 있는데, TV가 있는 자리는 이미 먼저 온 사람이 차지해버려서 나는 옆자리에 누워서, 휴대폰 말고는 볼게 없었다. 진통제가 돌아서 통증에도 좀 익숙해지고, 220분 가량 채취해야 하는데, 코디네이터(2) 님이랑 노가리 까는것도 한계가 있어서 그냥 노래 좀 들으며 잤다.

 

시원하게 자다 보니 어느세 채혈 시간도 끝나고,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하신 코디네이터님(1)도 막 도착하셔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사실 나는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일단 수고했다 하시니 어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ㅎㅎ,, 했다.

 

ㄴ 채혈 완료 후 찍은 사진이다. 저친구 한팩 뽑는데 몇명이 고생을 한건지^_^!

 

채혈이 끝난 후 조혈모세포는 바로 퀵으로 날아가고, 내 목의 cvc는 제거하지 않고 채취된 조혈모세포의 수가 충분하다는 싸인이 나오면 그 때 제거해야 한다며, 계속 그걸 달고 병실에 누워 있으라 했다. 다행히 진통제를 계속 먹어줘서 통증은 잠잠해졌다.

 

그 후 병원 점심을 먹고(여전히 맛없어), 코디네이터님(1)이 바리바리 챙겨주신 간식들 먹으면서 탱자탱자 누워 있었다. 병원밥만 먹다가 사회의 나트륨 맛을 보니 너무 황홀했다.ㅠㅠ

 

병실이 5인실이라서, 나는 누워있는데도 별의 별 일들이 막 일어났다. 할아버지 한분은 화장실 가다 쓰러지셔서 간호사님들이 총 출동해서 옮기고, 어떤 할아버지께선 치매가 있으신지 링거 맞은곳이 가렵다고 긁어데서 링거바늘이 혈관과 피부를 찢고 나와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모두 힘들게 투병하시는데 나만 누워서 탱자탱자 놀고 있으니 다시금 맘이 좀 아팠다.

 

기다리고 있으니 오후 4시쯤, 코디네이터님(1)이 오셔서 감사패와 기증자 유의사항 등을 전달해 주시고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셨다. 나는 그냥 누워있기만 했는데, 고맙단 말을 계속 들으니 좀 머쓱했다.

 

그후 또 저녁을 먹고, 같이 내려온 여자친구가 다음날 마지막 과목 시험이라 올려 보내주고 혼자 누워서 디씨 보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조혈모세포수 충분해서 ok싸인 났으니 cvc 제거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설마 그냥 뽑으시나...? 했는데 진짜 그냥 뽑아버리셨다.

 

거즈 제거하고, 시술부위를 소독 후 포셉으로 잡고 당겨버리더라구. 욕지꺼리가 목젖까지 올라갔는데 겨우 참았어. 기습적으로 뽑으셔서 그나마 나았던 것 같다. 그 후 다시 거즈 올리고 끝냈어. 뽑고 나니까 아픈것 보다는 시원한게 더 많아서 좋았다.

 

그 뒤는 하루 더 자고 퇴원수속 밟고 퇴원했다. 오늘 퇴원하는데 택시가 다 파업해버려서, 예매했던 기차표 취소하고 버스 타고 갔다. 패딩입고 갔는데 부산은 날씨가 따뜻해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 후 코디네이터님(1)께서 연락 주셔서 잘 들어갔나 확인하시고 2주 뒤 호중구,혈소판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검사를 한번 더 한다 하시고, 채취한 조혈모세포는 지금쯤 백혈병 환우님께 잘 전달됐을 거라 하셨다.

 

4. 마치며

 

직접 겪었을때는 뭔가 일이 쉴 세 없이 일어난 것 같았는데, 이렇게 적어보니 일이 많이 없는 것 같네. 불편한 점도 많고, 좀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내몸에서 뽑힌 세포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게 너무 기뻤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헌혈 같은 것도 누군가를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건 아니다. 그 차이점이 더 뿌듯한 기분을 갖게 해 주는 것 같다.

 

신청하는거 진짜 별 일 아니고, 병원 체험도 나름 재미있으니 망설이고 있다면 꼭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 했으면 좋겠다! 이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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